〈바람.체〉는 사람들의 바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람.체〉는 2011년 [타이포잔치동아시아의 불꽃(예술의 전당)] 전시에서 『혼돈』이라는 포스터에서 네 가지 굵기의 활자와 반각 활자를 선보였고, 2013년 2월부터 후원으로 23,861,333원을 받아서, 가장 굵은 굵기의 한글 2,363자, 알파벳 52자, 문장부호와 숫자 등을 포함한 3,500 여자를 10개월 동안 그렸습니다. 처음 〈바람.체〉를 계획하고 그릴 때, 옛 책에 쓰인 한글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옛 한글 활자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닌, 옛 활자를 ‘재해석’하여 전통을 잇되 지금의 활자와 다른 ‘그 무엇’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포스터 『혼돈』에 세로쓰기용으로 〈바람.체〉를 그렸고 문장부호 그리고 할주를 이용한 표현을 시도했습니다.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자연스럽게 개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결국 제목용에 가까운 활자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가로쓰기 세대인 제게 세로쓰기는 낯설었고, 세로쓰기용 활자의 균형은 학습을 통해서만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고했던 여러 활자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몇개의 활자를 말씀드리면, 〈바람.체〉의 점과 획은 붓으로 쓴 해서체 양식의 〈최지혁체(1882)〉의 영향을 받았고, 글자의 골격은 〈박경서체(1930경)〉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굵고 가는 줄기의 변화는 한자 폰트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이원모체(1933)〉의 형식을 빌려왔습니다. 또한 세로획이 굵은 〈바람.체〉를 전각 안에 넣기 위해서, 〈이남흥체〉의 획의 굵기 변화를 참고했습니다.
한글폰트 공급과 사용의 현실
한글폰트를 둘러싼 주요 관계자는 활자디자이너, 공급회사(폰트회사), 그리고 사용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사용자 중에는 한글폰트를 사서 쓰기보다, 인터넷에서 구하거나 선배 또는 친구들로부터 받아쓰곤 합니다. 한글을 쓰는데 돈을 내야 하나? 생각도 들고, 무료로 배포되는 폰트들도 있고, 컴퓨터에 기본 설치된 폰트들도 있으니, 따로 돈을 내고 한글폰트를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폰트회사는 대리인을 통해서 불법 사용자를 단속하고 있습니다. 단속된 불법 사용자는 한 종류의 폰트를 썼어도 패키지를 사야 합니다. 그렇게 발생한 수익의 상당 부분은 단속업체의 몫입니다. 결국, 단속된 사람이 단속되지 않은 사람들 몫을 내고 있는 것이며, 폰트회사는 단속업체와 공생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폰트회사는 열악한 시장환경을 이유로, 새로운 글꼴을 만들 생각보다, 빨리 만들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활자를 만드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고, 심지어 빨리 만드는 능력을 자랑합니다. 폰트회사의 이러한 실태를 살펴보면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5년 경력의 활자디자이너를 고용하여, 한 달에 200만원 정도 급여를 주고 6개월 동안 하나의 한글폰트를 만든다면, 회사는 월급만 1,200만원과 고용한 직원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100%), 폰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다른 인력의 비용(20%), 영업하는 인력의 비용(30%)으로 3,000만 원 이상을 쓰게 됩니다. 이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3,000만원 이상 벌어야 합니다. 폰트회사가 이렇게 만든 폰트를 30,000원에 판다면, 1,000개 이상을 팔아야 하는데, 아마도 수년 이상 걸릴 것입니다. 여기에 회사의 이윤까지 남기려면, 회사로서는 이미 만들어 놓은 한글폰트를 변형해서 파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 경험으로, 활자디자이너는 4~5년 넘게 다양한 활자를 그려봐야 비로소, 한글폰트를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된다고 봅니다. 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해도 활자디자인 교육을받지 않았기에, 대부분 폰트회사에 들어가서 기초부터 배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력이 10년 이상 되어도 경력과 비교하면 제대로 인건비를 받지 못하거나, 회사가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거나 독립하여 스스로 사무실을 운영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경력이 많은 활자디자이너를 찾아보기 힘들고, 있어도 인쇄출판용 활자보다는 전자기기나 컴퓨터 OS에 포함되는 활자를 위주로 제작하여, 인쇄용 활자를 그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쇄용 활자를 만든다고 해도 여전히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쓰임에 대한 판단과 사용자에 대한 배려 등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만 가능한데, 그럴 시간은 없고, 그러한 경험을 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경제 발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지난 60년 동안, 옛 문화를 소홀히 하고, 서양의 활자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전통적인 한글의 미감을 잃어버린탓도 있을 것입니다. 한글폰트와 관계된 주요한 사람들이 물고 물리는 이 현실이 한글폰트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이유입니다. 점점 좋은 활자의 품질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어지고, 조악한 품질의 폰트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해서 제작되어 우리 일상이 널리 퍼져있기에, 이제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텀블벅에서 한글폰트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 2011년 12월 17일 한글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위원회는 한글폰트(활자)에 관계하여 개선해야 할 여러 사안을 논의하고 실천하는 기구입니다. 여러 차례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글디자이너가 정신적 경제적 보상을 받으며 살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분야가 정상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그 속에서 실제로 한글폰트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정신적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열악한 시장 상황—불법 복제, 불투명한 가격과 복잡한 사용범위,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용자의 글자꼴 저작권에 대한 인식결여, 좋지 못한 폰트 등 물고 물리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한글폰트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려는 방법 또한 이야기했습니다. 그중에는 정부에 글자꼴을 저작권법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자, 사용자들이 불법 복제를 하지 않도록 계몽운동을 하자, 폰트 가격과 거래가 공정해야 한다, 좋은 한글폰트를 개발해야 한다, 한글폰트는 정부가 맡아서 개발해야 한다, 한글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어렵더라도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이러한 일들이 현실에서 좋아질 수 있을까, 대안이 있을지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분이 클라우드 펀딩을 이야기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크라우드 펀딩은 정치인 후원이나 영화를 공동 투자하는 일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크라우드 펀딩을 알아보다 텀블벅을 알게 되었습니다. 텀블벅 운영자를 만나 현 사회에서 왜 크라우드 펀딩이 일어나고 있는지 듣게 되었고, 제가 갖고 있던 근거 없는 선입견이 사라졌습니다. 한글폰트가 사용자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질 수 있다면, 이 한글폰트를 둘러싼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 개인이라도 좋은 한글폰트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람.체〉의 가격
한글폰트가 정상적으로 유통되기 위해서는 구매자가 이해할 만한 가격이야 합니다. 소비자가 비싸다고 여긴다면 왜 비싼지 판매자가 알려야 하겠죠. 그러기 위해서 먼저 폰트 가격을 정하는 방식과 기준이 회사마다 다를지라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떤 근거를 제시하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최근 폰트 회사들은 폰트 판매를 사용권한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받는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예를 들면 폰트를 사면 보통 인쇄 출판에 사용할 수있는 사용권리를 받고, C.I, B.I, 방송 등에 쓰려면 추가 사용료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사용범위만 구분해 놓았을 뿐 가격을 공개하지 않아서, 문의를 해야 추가 사용료가 얼마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또는 소기업이냐 등에 따라 추가 사용료는 달라집니다. 많이 버는 사람에게 많이 받고 적게 버는 사람에게 적게 받는 모습이 좀 더 인간적으로도 보이지만, 한글폰트 가격은 고무줄같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물건으로 보입니다. 불신의 씨앗을 뿌리는 셈이죠. 〈바람.체〉 가격을 정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나라에 한글폰트를 사서 써야 하는 곳을 생각해보았습니다. 2011년 지식경제부에 신고된 디자인전문회사는 3,000곳이 넘었고, 신고하지 않은 숫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출판사도 2009년 기준 35,000곳이 넘고 한 권이라도 출판한 곳은 2,900곳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전자 제품을 만드는 회사 또한 한글폰트를 사야 할 곳입니다. 하나의 폰트는 한 컴퓨터 기준으로 판매하고 있으니, 한 회사라도 여러 컴퓨터에서 사용하려면 사용할 컴퓨터 수만큼 구입해야 합니다. 또한 개인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도 있으니 한글폰트를 사서 써야 하는 사람은 적어도 10,000명보다 많지 않을까요? 그리고 디자이너가 아닌 일반 사용자를 생각해보면, 정부기관과 공기업에 200만 명 이상 있다고 합니다. 학교의 교직원과 학생도 있겠죠.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제 직업이 한글디자인인지라 사람들에게 한글폰트 가격에 대해서 자주 묻곤 합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폰트 하나에 5천원에서 5만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하고, 디자이너들은 2~3만원에서 10만원 정도를 말합니다. 확실히 디자인분야마다 시장규모가 다르다 보니 디자이너들 또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생각하는 적정 폰트 가격도 차이 나는 듯합니다. 결국 한글폰트 가격을 정할 때, 제작자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의 대가와 이윤을 계산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을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폰트가 과연 몇 개나 팔리는지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바람.체〉의 목표는 1,000개입니다. 〈바람.체〉는 라이선스 1, 2, 3으로 구분하고, 가격은 각각 1만원, 3만원, 5만원으로 정했습니다. 라이선스 1은 교육용 또는 비 상업적 용도로 쓸 사람을 생각했고, 라이선스 2는 상업적인 인쇄와 출판을 하는 사람을 생각했고, 라이선스 3은 상업적인 인쇄 출판은 물론 C.I, B.I, 영상, 옥외 간판, 기기, 게임, 제품 제작 등에 재판매를 제외한 모든 곳에 사용할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과연 1,000명이 각자 필요한 용도에 맞춰 〈바람.체〉를 살지 모르지만, 한글폰트가 정상적으로 거래된다면 이 정도는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람.체〉에 담은 바람……
[바람]은 자연에서 생명을 나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짧은 생각이지만, 수없이 많은 관계 속에서 생명이 자라는데, 모두 자기 역할을 잘해야 생명이 건강하게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한글폰트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잘할 때, 온전하게 건강한 한글폰트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바람]이 이루어지려면 활자디자이너와 판매자, 그리고 사용자가 한글폰트를 중심으로 연결된 악순환 고리를 끊고, 선순환 구조로 바꾸어야 합니다. 활자디자이너로서 할 일은, 온전한 한글폰트 제작과정과 좋은 한글폰트에 대한 판단 기준을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말하고 보여줘야 합니다.〈바람.체〉 프로젝트는 한글폰트제작 과정과 비용 등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폰트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원자분들께서도 〈바람.체〉가 담고 있는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형태를 매만지는 한 개인의 활자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바람.체〉가 한글 활자 문화의 맥을 잇는 작은 징검다리가 되기 바랍니다. 자기 복제와 다른 사람이 디자인한 활자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베끼는 상황에서 올바른 모방의 대상을 찾아, 그것으로부터 새로움을 만드는 방법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새로운 것, 좋은 것을 만드는 출발점을 찾기 바랐습니다.한글 활자꼴의 변화
한글은 세로쓰기와 가로쓰기가 있습니다. 1443년에 만들어진 한글은 세로로 썼습니다. 그리고 한글은 궁궐과 사찰을 중심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처음 선보였던 초기의 딱딱하고 각진 모습이 거의 사라지고, 붓의 특징과 함께 손글씨의 특징이 글자에 반영되면서 한글꼴은 다양해졌습니다. 궁궐을 중심으로 글씨를 바르게 썼던 양식이 궁서체입니다. 그 뒤 1900년 즈음, 서양의 문물에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은 서양의 문장 방향을 따라서 한글 가로쓰기를 주장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한글 풀어쓰기입니다. 1445년 정부가 교과서를 시작으로 500년 동안 세로로 썼던 한글을 가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 대 말부터, 정부는 한글 가로쓰기를 권장했고, 지금은 모든 매체가 가로쓰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부분 활자디자이너는 가로쓰기에 맞춰 한글을 디자인합니다. 제 생각에 세로쓰기를 지속하였더라면, 한글 활자에서도 알파벳과 같은 ‘베이스라인과 엑스 – 하이트’ 개념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세로로 쓴 한글에는 글자의 오른쪽에 기준선이 있고, 왼쪽에 엑스 – 하이트와 같은 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체〉의 구조
최정호 활자 이후에 한글의 무게 중심은 글자의 한가운데에 둡니다. ‘값’의 ‘ㅂ’은 글자의 무게 중심을 가운데로 향하기 위해 ‘ㅂ’의 세로 줄기의 높이를 차이를 주면서 조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글자에 무게중심을 맞추면, 이 중심이 글줄의 흐름을 단단하게 만들게 됩니다. 획이 굵은 활자는 일정한 공간에 복잡한 획들을 모두 그려야 하므로, 획 수에 따다 획의 굵기 변화가 필요합니다. 획의 변화는 어떤 크기를 기준으로 조정하느냐에 따라 차이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으며, 작게 쓸수록 더욱 이러한 조절을 해야 합니다. 옛날 한글을 세로로 썼을 때 발견되는 물리적인 중심선(베이스라인)과 세로모임꼴 닿자의 너비(엑스 – 하이트)를 하나의 띠처럼 생각하면서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알파벳 디자인
한글을 쓰는 사람이 왜 알파벳을 포함한 다른 나라 글자를 그려야 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일상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가 많이 들어온 탓이겠고, 특히 알파벳을 사용하는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글디자이너가 그리는 알파벳이나 한자는 ‘한글에 어울리는’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자를 어울리게 디자인한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도구로 쓰인 글씨에서 출발한 표현을 비슷하게 맞춰야 하고, 모아쓰기냐 풀어쓰기냐처럼 구조(뼈대)가 다를지라도 함께 썼을 때 비슷해 보여야 합니다. 여기에 디자인 의도나 활자의 역사에서의 맥락도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서로 다른 문자를 조화롭게 만든다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한글 활자와 함께 쓸 알파벳을 그리면서 갖게 된 생각은 “대문자는 글자 높이를 낮게 하고, 글자 너비는 가능한 물리적으로 균일하게 만든다. 그리고 속공간은 시각적으로 작게 보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세리프는 가능한 작고, 날카롭지 않게 그린다. 소문자는 엑스 – 하이트는 높게 디자인하고, 어센더와 디센더는 가능한 엑스 – 하이트와 베이스라인에서 멀어지지 않게 한다. 대문자와 마찬가지로 글자 너비는 가능한 물리적으로 균일하고, 세리프는 가능한 작고 부드럽게 그려야 한다” 입니다.
〈바람.체〉 알파벳
큰 방향은 앞서 말했듯이, 〈바람.체〉 알파벳은 대문자 높이가 낮고 소문자의 엑스 – 하이트는 높으며, 마침표 등 문장부호의 크기와 위치를 한글에 맞췄습니다. 그래서 알파벳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무척 불편한 모습입니다. 특히 세로쓰기 상태에서 한글과 알파벳의 조화를 찾다 보니, 평소 가로쓰기에서 한글과 어울리는 알파벳을 그릴 때보다도 더 낯섭니다. 사실,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알파벳이 얼마나 다양한지 모르고, 각 활자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정확히 모르기에 정확한 선택을 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만, 〈바람.체〉에 어울리는 알파벳의 뼈대로 ‘소비니에(Souvenir)’를 선택했습니다. 소비니에는 한글과 알파벳의 어울림을 방해하는 요인이었던 ‘g’의 루프가 좁아서 베이스라인 아래로 많이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글과 함께 썼을 때, 글줄의 높낮이 차이가 작습니다. 그리고 굵은 소비니에는 작은 크기로 쓸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예를 들면, ‘A, U, y’ 등을 보면 굵은 글자일 때, 속공간을 넓히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획이 굵은 〈바람.체〉와 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그리고 〈바람.체〉는 글자의 부분들이 날카로워 차가워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듯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비니에의 끝 부분(터미널)들이 둥글게 표현된 것 또한 유사해 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직 알파벳 부분은 정확한 판단을 했는지 계속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바람.체〉를 보완할 때, 알파벳도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체〉의 적정한 크기
〈바람.체〉는 세로쓰기를 기준으로 30~60포인트 크기 사이에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글자의 중심과 균형, 그리고 획 굵기를 맞췄습니다. 가로와 세로 획의 굵기 차이가 커서 긴 글에 쓰기는 적당하지 않고, 낱말이나 짧은 글 정도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오프셋인쇄를 해보면 복잡하지 않은 글자의 경우 12포인트까지도 쓸 수도 있지만, 최소한 20포인트 이상은 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뒤에 글자들의 무게와 힘, 농도를 더 비슷하게 보이도록 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한글 코드에 관한 생각
KS 한글 코드에는 한글 이외에 다른 나라 문자인 가나(일본), 키릴(러시아), 그릭(그리스)이 들어있고, 어디에 쓰는지 모르는 문장부호, 그리고 특수문자 등이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저 또한 한글폰트를 만들 때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관행적으로 그려넣었습니다. 그래서 〈바람.체〉에도 KS 코드에 명시된 특수문자들을 그리겠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 봄부터 한글 코드 표준화를 위한 기초 조사를 몇 명의 선생님들과 진행하면서, KS 한글 코드에 불합리한 여러 문제가, 왜 생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활판인쇄를 할 때 필요해서 썼으나 지금은 쓰지 않는 특수문자, 한글에는 필요없는 라틴어 발음기호와 음성부호, 어디에 쓰는지 모르는 특수문자 등…. 이러한 문제를 〈바람.체〉에 그대로 담아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처음 발표한 계획대로 〈바람.체〉를 마무리하는 것이, 후원해주신 분들과 아무런 문제를 만들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바람.체〉 프로젝트를 한글폰트 제작 환경이 지금보다 건강해지기 바라는 마음에 시작했는데, 불합리한 문제를 〈바람.체〉에 담는다는 것이, ‘맞지 않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후원자분들께 제 생각을 전달했고, 다행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바람.체〉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특수문자들을 빼고, 필요하고 어울릴만한 특수문자를 넣게 되었습니다.
〈바람.체〉의 특수문자와 딩벳
〈바람.체〉에 무엇을 넣을지, 한글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생각해보았습니다. 문장부호, KS 한글 코드에는 여러 문장부호가 있습니다. 문장부호는 문장의 뜻을 명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종결형 또는 연결형 어미가 있어서, 한글에는 문장부호가 없어도 뜻을 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 국어에서 문장부호를 사용하고 있고, 국립국어원에서도 문장부호 사용을 규정해 놓았으니, 〈바람.체〉도 국립국어원 기준으로 문장부호를 만들었습니다. 조금 힘들었던 것은 KS 한글 코드에는 국립국어원에서 쓰게 되어 있는 문장부호를 넣을 자리가 없어, 비슷한 모양이 들어있는 자리를 이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숨김표와 가림표 등입니다. 그리고 KS한글 코드에는 마침표 쉼표 괄호 등 기본적인 세로쓰기용 문장부호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려 넣었습니다. 〈바람.체〉를 세로쓰기에 적합하게 만들고 있어서, 유니코드에 있는 세로쓰기용 문장부호와 기호들을 더 그려 넣었습니다.이 과정에서 몇 가지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대부분의 한글폰트는 세로로 쓸 때 문장부호들이 정확한 위치에 있지 않거나, 세로쓰기용 문장부호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가로쓰기를 전제로 만들어서 세로쓰기를 고려하지 않은 탓으로 보입니다. 결국, 세로쓰기에 편한 한글폰트를 만들려니,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따를 수 있는 표준 폰트가 없어서, 세로쓰기 경험이 많은 편집디자이너와 폰트 엔지니어의도움을 받아가며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원하는 만큼 만들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한글폰트를 제작하는 도구의 문제와 한글폰트를 쓰는 프로그램 환경이 지원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한글과 알파벳에 모두 쓰는 문장부호지만, 하나의 모양으로 같이 써야 하는 경우 입니다. 글자의 높낮이가 다르다 보니 하나의 문장부호를 두 문자에서 공유하여 쓰면, 크기와 위치 등이 맞질 않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하나의 문장부호를 두 개 만들어서 하나는 한글과 함께 쓰고, 또 하나는 알파벳과 함께 쓰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편집전문 프로그램에서만 가능하여, 두 가지를 골라 쓸 수 없는 프로그램에서는 조금 어색하거나 일일이 찾아서 바꿔주려면 조금 불편합니다. 난감한 문제는 더 있습니다. 자판에 있는 ‘`, ^’ 등은 알파벳에서 쓰는 음성부호라서 한글에 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리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처럼 쓴다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물론 이모티콘으로 쓰기에 적합하도록 모양을 조금 변형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한글 코드에는 그리스 글자, 러시아 키릴, 일본 가나, 한자를 넣을 자리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한자는 5,000자가량 되다 보니, 보통 그리지 않는 게 당연했지만, 가나와 키릴 등은 숫자가 많지 않아서인지 대부분 그려 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체〉의 쓰임을 생각하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뺐습니다. 그리고 mm, ml, km 단위 표시 등을 계속 빼다보니, 1,000자 중에서 거의 반을 뺐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채워 넣을 생각을 하니, 〈바람.체〉에 무엇이 어울리는지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바람.체〉를 쓰면서 느꼈던 것은 원문자(괄호문자)가 함께 쓰기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세로쓰기에서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문자 계열을 만들어 넣었고,같은 생각에 월과 일, 그리고 요일도 그려넣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바람.체〉의 표정이 강해서 원이나 괄호 안에 넣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괄호문자의 경우 가로로 쓸 때 한글보다 크기가 작아 보여서, 조금 어색합니다. 특수문자를 빼고 넣는 과정에서 화살표와 괘선은 조금 더 추가했습니다. 처음에는 빼려고 했으나, 〈바람.체〉가 가는 선들과 어울려 보이기도 하고, 제목용으로 쓰다 보면 화살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괘선 역시 처음에는 ‘누가 요즘 이런 걸 쓸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빼려고 했는데, 본래의 기능이 아니더라도 쓸 수 있는 곳이 있을 것 같아서 오히려 점선과 곡선을 추가해 놓았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기하 도형도 전각문자의 특징을 반영하여 조금 더 그렸습니다. KS 한글 코드에 여러 수식 기호가 있으나, 〈바람.체〉는 ‘+, -, ×, ÷, =’만 그렸습니다. 대신에 ‘ – ‘를 쓰임에 따라 달리 그려넣었습니다. 자판에 있는 ‘ – (하이픈 – 마이너스)’은 실생활에서는 전화번호나 주소에 쓴다고 생각하여, 숫자에 맞도록 굵기를 조정하고, ‘-(마이너스)’와 ‘ – (하이픈)’을 각각 유니코드에 정해진 자리에 넣었습니다. 특히 ‘-(마이너스)’는 ‘+, ×, ÷, =’와 굵기와 크기 위치를 맞췄습니다. 〈바람.체〉에 넣을 특수문자를 유니코드에서 살펴보니 재활용, 성별, 날씨, 글자의 점과 획, 64괘, 음양, 음성부호, 산술기호, 등 많은 특수문자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성별을 표시하는 기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남성과 여성 말고도 ‘성 정체성’을 표시하는 기호가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성’에 관련된 여러 상징과 함께 유니코드에는 없었지만 ‘무지개’를 그려 넣었습니다.생각을 거듭하면서, 사람들이 〈바람.체〉를 제가 바라는 곳에 쓸 수 있도록 딩벳과 상징을 추가했습니다. 가장 먼저 전통문양이 떠올랐습니다. ‘전통’을 말할 때마다, 잘 모르면서 말하는 기분이라 좀 겸연쩍지만, 〈바람.체〉의 기획의도와도 맞아서 ‘어미’와 ‘장식문양’을 넣었습니다. ‘어미’는 옛 책을 만들 때 본문 종이를 반으로 접을 때 자리를 표시하는 기능과 함께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으며, 나중에는 장식으로 활용했습니다. ‘어미’를 만들어 놓고 보니, 괄호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크기는 괄호의 크기에 맞췄습니다. 그리고 옛 책 표지에서 많이 쓰였던 능화, 연화, 만자, 귀갑, 번개, 박쥐 등 능화문의 요소를 패턴으로 만들고, 그중 일부는 말머리 기호로 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사람들이 〈바람.체〉를 환경과 자연에 관련된 내용에 쓰길 바라는 마음에 재활용 상징과 날씨 등을 그려 넣었고, 동아시아의 문화에 관련된 내용에 쓰이기 바라며 태극 음양 64괘도 그렸습니다. 뺄 것 빼고, 넣을 것 넣고 나니, 〈바람.체〉가 어떻게 쓰이길 바랐는지, 제 마음도 자연스레 분명해졌습니다. 〈바람.체〉가 여러분의 바람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 계속 수정 보완하여, 후원해주신 마음에 보답하겠습니다.
〈바람.체〉를 후원해 주신 분들
김지현 이경아 ◯ 노승관 성에스더 송금순 이지연 한재준 강미연 강환엽 김종건 박현아 서관희 송윤형 심우진 유승백 이선아 한송희 workroom ◯ 강나현 김민주 김상 김성현 김완규 김지명 김지홍 류양희 민본 박기영 박솔희 박찬신 안삼열 유윤석 유지원 윤성권 이용석 이윤주 이지원 이태우 이훈혜 장미혜 장우석 전가경 정희연 채혜선 최바다 최서훈 최성민 최주영 최희정 하린비 한담희 현준혁 컷코너스 현지희 ◯ 강민재 권미혜 김동관 김민재 김소미 김수정 김영나 김혜규 나은민 노지호 박선주 박소영 박우혁 박유하 선우현승 손혜인 양리혜 오수연 오현주 유명상 유익한 조형 이규승 이민구 이민정 이승현 전성호 전유니 조하늘 지슬기 최종각 최해성 프로파간다 한우림 ScrapHeap ◯ 강문식 강성주 강영훈 고광석 고선영 고슬기 고진호 구운회 김가을 김경태 김다슬 김미진 김민규 김선하 김소라 김아영 김예슬 김예현 김윤미 김은하 김인영 김정규 김초롱 노은유 다람쥐하우스 독고오공 돈선필 류수필 류순선 문충실 민성훈 민준기 박경식 박다롱 박민상 박상민 박상석 박상현 박새연 박선희 박성완 박인철 박정민 박지원 박한웅 박효리 백진이 서수환 소원영 손진식 송유진 송혜미 스노우캣 스미다 신동혁 신승백 신유진 안나연 안상희 양민영 양은경 오세범 우경우 워크스 유어마인드 유주연 유진아 윤여경 윤영준 윤한석 이권일 이노을 이루다 이수정 이승원 이승협 이윤경 이재진 이정기 이정민 이정훈 이지윤 이진우 이태호 이현정 이호민 임문택 임주희 장민혁 장용석 전제환 정래윤 정재완 정진명 정홍미 제주 커피쟁이 조규진 조세현 최광원 최빛그림 최재성 최찬휘 최한솔 최혜진 코우너스 쿠키크럼블 한상민 한송이 허혜은 홍박사 홍성우 황혜경 Knee Pena9 ◯ 강명지 강소영 강수민 강슬기 강은모 강이슬 강지우 강진영 강진호 공미라 곽옥동 곽은진 구모아 구슬기 권용헌 권욱상 김가경 김가영 김경민 김경현 김기원 김기태 김다은 김다흰 김면희 김민아 김민영 김민재 김선예 김성연 김성은 김수랑 김아해 김유라 김유진 김인혜 김정완 김정헌 김정현 김종인 김지혜 김태연 김한희 김형민 김형진 김호 나윤희 남형진 다우 도서출판 초여명 류상욱 류성한 문보현 민다현 박다솜 박민수 박세중 박소영 박소현 박시영 박준하 박하은 반 – 바지 방지현 백유라 보옴 서유진 서일지 서정은 설다혜 성기철 성지나 소보람 손예란 송한별 신해나 스튜디오 기글스 스튜디오 고민 안유 양미나 양원영 양재혁 엄하정 오명은 오새날 오응제 유경희 유다윤 유민주 유승아 유은혜 유지형 유혜미 윤기열 윤민구 이기만 이기쁨 이두영 이사림 이상승 이선규 이수진 이영채 이은수 이은우 이재영 이정영 이제월 이진아 이진현 이찬희 이현제 이형석 이혜연 이혜진 이효진 임솔 임원우 임지수 임채훈 전명아 전선영 전준아 정다움 정수진 정영훈 정해리 제니킴 조도희 조은미 조현석 조혜령 주영훈 주헤미안 진보라 차태현 최서령 최성식 최아영 최예지 최정미 최지아 최평국 크리스로 펭도 하연수 한민 한보람 한신야 한정훈 허준혁 허지혜 현내진 홍보라 홍재원 황귀현 황수경 황재민 Miho Maeng /ppori PD /woja /Yoonjoo Seung /Zin Young ◯ 구본욱 배수현 선윤아 염재승 윤세영 이다솜 이영주 최윤정 홍기성 ◯ 강민경 강신재 고유희 김상원 김수량 박우이 소요 손영진 신건모 안은별 윤나래 이동환 이상카 이영 이유지니 이정훈 임규민 장소정 전혜준 조아라 홍미학 황진숙 ◯ 강찬 박정미 안상남 채가명